세월은 유수같이 흐른다고 했던가...
어릴적 고향 동리 앞에는 무서웠던 서낭당 소나무가 아직 건재하고, 벌초를 해야 할 기성중학교 운동장 앞 산소에 딸린 위토답(位土畓)은
지금까지 동네 사람에게 도지를 줬던 약쑥을 재배할 밭이 딸려있고 산소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는 앞이 넓게 탁트인 동해바다와 그림같은
하얀모래 백사장이 하천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서 언덕처럼 펼쳐져 있다.
기성 동리에 도지를 줬던 분이 심어놓은 고추밭이 돌아가시게 되면서 관리를 안해 잡초가 우거진 밭 둘레로 둘러쳐 놓은 녹슨 철조망이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형님에게 쇠말뚝과 철조망을 모두 걷어내고 잡초가 안나도록 밭을 갈아서 비닐로 덮어 달라고 부탁하고 벌초를 시작했다.
이 산소는 초등학교 들어가기전 어릴적부터 리어카에 떡과 고기를 쪄서 큰 대바구니 몇개에 나누어 담고 리어카로 실고가서 제사를 지내고
나면 동네 사람들이 보자기를 펼쳐놓고 떡과 유과와 과일 생선을 받아 가던 추억이 성인이 되어서 벌초로 다시 찾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끼니가 부족했던 그 시절 맛나는 유일한 먹거리중 하나가 가까운 산소에서 제사를 지내고 받아가던 제사 음식이었다.
산소 바로 앞에는 파도와 바람이 몰아치는 바다가 있는 곳이지만 하천이 맞닿아 있어서인지 벼농사와 밭 농사가 잘되는 곳이다.
더군다나 산소에 있는 오래된 소나무는 순조이전부터 있었던 소나무로 동해안 바닷가에 자라는 소나무들은 모두 이 산소에 있는 소나무에서
씨를 받아 소나무를 퍼트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옛날 어촌 사람들이 몰래 소나무를 베어다가 배를 만들어서 타고 나갈때마다 배가 바다에 침몰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면서 지금까지
소나무가 건재했다는 소설같은 전래 이야기가 우리 형제들에게는 이 산소와 관련하여 흐른다.
바다 끝에 있는 산봉우리를 '곡대산'이라고 부르는데, 어릴때 기성 동리에서 멸치를 잡으려고 그물을 펼칠때면 산봉우리에서 멸치 망지기가
멸치때를 보고 기를 흔들며 멸치때 방향을 알려 줬다고 하는데, 나는 어릴 때 딱한번 동네에서 멸치를 잡으려고 동네 사람들이 합심하여
땟마를 타고 나가 그물을 넓게 펼쳐서 온갖 고기를 잡았던 추억이 있다.
곡대산 명칭은 선조 임진왜란후 아계 이산해(李山海)가 기성면에서 가까운 평해 황보에 유배살이를 할때 이 산에 올라 바다를 보며
시를 읊을 때 따오기 새가 날아와 울었다고 해서 곡대산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산해는 권세가 답지 않게 검소하고 청빈하게 군자처럼 살았지만 서인과 동인의 당파 싸움에서 주도적인 역활을 하여 피비린내 나는 사건으로
역사적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강하게 내려지는 인물로 군자처럼 살아도 욕먹는 판에 현대판 권력자는 다 해처먹어도 부끄러운줄 모르는 세상...
정명하천은 기성면 산골짜기 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들이 川를 이뤄 정명천으로 흐르고 정명천은 기성리 모래사구 하천 하구에서 정기가 모였다가
넓은 동해바다와 만나 새로운 시작을 하는 혈의 정기가 모였다 풀어지는 항아리 같은 곳이다.
지금의 모래언덕은 개발에 의해 모래를 많이 퍼내면서 옛모습을 많이 잃어버렸지만 아직은 그 기운이 남아 있는 곳으로 필자에게는
가슴이 시리도록 아파오는 그리운 할머니의 추억과 함께 바다를 보며 모래사장에 가만히 않아 있기만 해도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에
마음이 평온해지는 힐링의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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